소설 57

김진명의 '풍수전쟁' - 과학과 전통의 교차점

김진명 작가의 '풍수전쟁'은 그야말로 한국 문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전통적인 무속 신앙과 풍수 그리고 과학의 영역인 양자역학이라는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주제가 놀라운 방식으로 교차한다. 이 작품의 중심 스토리는 청와대 행정관 김은하수의 범인을 향한 추적이다. 그러나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특별함이 두드러진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도착한 '나이파 이한필베'라는 의문의 문자 메시지가 이야기의 시발점이다. 김은하수는 원래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인물이지만 사건을 추적하며 그녀가 어떻게 전통적인 무속신앙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지 그 변화의 과정이 섬세하게 그린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도착한 '나이파 이한필베'라는 의문의 문자 메시지를 추적하는 김은하수의 여정은 그..

소설 2023.08.24

스티븐 킹의 단편집 '악몽과 몽상1, 2' -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이야기들의 진수

이 책은 스티븐 킹이 각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단편소설을 모아 엮은 단편집이다. 수록된 작품들 대부분이 공포물이다. 그러나 마냥 어두운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2권의 말미에는 자신의 아들이 야구 시합을 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다룬 에세이가 실려있다. 시체 썩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모처럼 스티븐 킹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스티븐 킹의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시다. 그렇다. 정말 '시'가 포함되어 있다. 어찌나 '시'다운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글귀였다. 참고로 스티븐 킹은 메인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을 만큼 시에도 조예가 깊다(대학 시절 시 창작 실습수업을 듣던 여학생 태비와 결혼했다). '내 귀염둥이 조랑말'이도 잔잔하고 감미로운..

소설 2023.06.26

정보라의 '한밤의 시간표' - 숨겨진 비밀을 찾아서

이 책은 저자의 대표작 '저주토끼'와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연작으로 이어지는 단편 소설집이다. 정보라의 필력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며, 긴장과 호기심으로 가득 채운다. 각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을 때, '그래서 왜 그렇게 된 거지?'라는 물음이 남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서사가 허술하다는 느낌도 없다. 기승전결보다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불운한 사람들은 미지의 연구소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그녀들과 저주받은 물건들이 연결되어 가면서 점점 어두운 비밀의 베일이 벗겨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긴밀한 플롯과 예상치 못한 전개를 펼쳐, 읽는 내내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저자의 능숙한 서술력은 도시의 희미한 불빛과 오싹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킨..

소설 2023.06.21

B. A. 패리스의 '테라피스트' - 의심과 복잡성의 틈새

이 책은 심리 스릴러로 비밀과 음모가 얽힌 상황에서 감정적인 혼란이 가중되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앞서 여러 차례 복잡한 심리묘사를 주축으로 한 작품을 엮어낸 바 있다. 앞서 읽은 저자의 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이 책도 그런 기대를 품고 읽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결론 먼저 말하자면, 이 작가의 최고작은 아니다. 이야기는 '앨리스'라는 여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앨리스가 고급 주택가로 이사를 가면서 시작된다. 그 집은 불과 4개월 전 잔혹한 살인 사건이 있었던 집이라는 사실을 뒤 늦게 알게 되었고 자신도 스토킹을 당하는 듯한 정황이 포착된다. 의혹이 굳어짐에 따라 이웃들도 하나둘씩 수상하게 행동한다. 동거남과의 관계도 미묘하게 멀어지게 된다. 이어 그의 어두..

소설 2023.06.08

B. A. 패리스의 '비하인드 도어' - 결혼 생활의 이면

이 책은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레이스와 잭이라는 완벽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보기에는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둘의 결혼 생활은 어둠과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이자 잭의 아내인 그레이스는 남편의 본성에 저항하고 몸부림친다. 그레이스는 수없이 위기를 빠진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로 일어선다. 또한 놀라운 결단력으로 대담하게 맞서 싸운다. 책을 쥐고 있는 나조차 희열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부부(지인이라는 명칭이 아까운 인간들)도 일종의 쇼윈도우 부부에 가깝다. 낮에는 여 보란 듯 인스타그램에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노출시킨다. 밤이 되면 서로 욕지거리를 교환한다. 때로는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는다. 좀 참은 날은 집안 살림을 부수..

소설 2023.06.03

B. A. 패리스의 '브레이크 다운' - 사라진 기억

식상함이란 무엇일까? 스릴러 소설이라면 무릇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야심한 밤이어야만 한다. 잔혹하게 살해되는 모종의 사건도 필수적 요소이다. 이 책의 시발점이 바로 그런 진부한 설정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전형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 같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을 펼치는 순간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족쇄를 차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몰입할 만큼 흥미진진했다. 주인공 캐시는 모친의 병수발을 드느라 3년 전 교사직을 내려놓는다(이 또한 진부하지만). 모친은 44세에 치매 조기 발병으로 평탄하지 못한 여생을 보내고 숨을 거둔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모친의 죽음 이후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좋든 싫든 평온은 다시 찾아왔고, 다정다감한..

소설 2023.05.30

책 『총알차 타기』 - 스티븐 킹

때는 2000년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온라인에서만 구입 가능한 전자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시대를 훌쩍 뛰어넘는 기행이었다. 출판 업자들의 가장 좋은 땔감이었던 스티븐 킹이 전자책을 발행한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출판 시장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남긴다. 출판 업자들도 이제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희소 섞인 말을 남겼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소설이 다 그렇듯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 플롯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야밤에 차를 얻어 탔는데 말이야. 글쎄, 그게 귀신이 운전하는 차였더라.' 하나 더. '택시 야간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한 손님이 지갑을 두고 온 거야. 집에 들어가서 얼른 돈을 가져온다고 하더니,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네? 그래..

소설 2023.03.07

책 『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불의의 사고로 뇌수술을 받고 초능력이 생긴다면? 이 물음을 전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요 등장인물 두 명은 초능력자로 비추어진다. 그러나 실상은 철저히 계산된 능력이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레인맨」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니다. 도박사가 아니라 천문학적인 수를 암산으로 계산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10분 후에 비가 올 거예요" 10분 후 예측이 맞아떨어진다. 기후에 관한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대입해서 10분 후에 비가 온다는 결괏값을 도출한 것이다. 겐토는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고 천재 신경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다. 이후 의식이 돌아오지만 모든 기억을 잃고 만다.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뇌 내부에 얽히고설킨 기억의 연결 고리가 모두 끊어진 상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소설 2023.02.19

책 『눈뜬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4년 전 모든 사람들의 눈이 머는 재앙을 겪는다. 정전만 되어도 울부짖는 시대. 한 순간 모두의 눈이 멀고 만다. 전 인류가 맹인이 되었지만 딱 한 명은 멀쩡히 앞을 볼 수 있었다. 안과 의사의 아내다. 눈이 멀기 시작한 시점. 정부는 맹인들을 역병 환자 취급을 하며 수용소로 가두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차례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약자의 탄압에 가담한다. 그 과정에 안과 의사의 아내는 남편을 돌보기 위해 맹인 행세를 하며 동반 입소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여기까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가 쓴「눈먼 자들의 도시」의 줄거리이다(그래, 맞다.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오늘 소개할 책 「눈뜬 자들의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의 후속작이다. 「눈먼 ..

소설 2023.02.10

책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변두리의 작은 섬마을에서 한평생을 산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22살에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한다. 한순간의 실수는 자신을 평생 고통 속으로 빠뜨린다. 22살 동갑내기의 남편은 철부지에 불과했다. 음주 문제를 쉴 새 없이 일으키고 다녔다. 거기다 걸핏하면 부인을 패기까지 했다.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자신의 부모님 또한 그러한(술 먹고, 때리고 맞는) 일생을 살았다는 것을 되뇌며 마음을 바로 잡곤했다. 남편의 폭력조차 이른바 '가정 바로잡기'라고 미화하며 참고 견디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건 바로 유희 거리로 자신을 폭행한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남편은 가정이 바로 잡히건 말건 관심 밖이었다. 단지 수틀리면 아내를 패는 게 일상이었을 뿐이었다...

소설 2023.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