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B. A. 패리스의 '브레이크 다운' - 사라진 기억

코페르니의 책 리뷰 2023. 5. 30. 22:50
B, A. 패리스
브레이크 다운
이미지 출처 - 밀리의 서재

 


 
  식상함이란 무엇일까? 스릴러 소설이라면 무릇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야심한 밤이어야만 한다. 잔혹하게 살해되는 모종의 사건도 필수적 요소이다. 이 책의 시발점이 바로 그런 진부한 설정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전형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 같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을 펼치는 순간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족쇄를 차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몰입할 만큼 흥미진진했다.

  주인공 캐시는 모친의 병수발을 드느라 3년 전 교사직을 내려놓는다(이 또한 진부하지만). 모친은 44세에 치매 조기 발병으로 평탄하지 못한 여생을 보내고 숨을 거둔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모친의 죽음 이후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좋든 싫든 평온은 다시 찾아왔고, 다정다감한 남편까지 만나 가정을 꾸리기까지 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녀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절친한 친구가 살인 사건으로 절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치매 증세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캐시는 복잡한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는 과정에 자신의 삶과 가족에 대한 무서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디테일한 플롯과 긴박한 전개로 속도감 있게 책에 이끌려간다. 정말 그렇다. 책을 읽는 행위는 나의 자유 의지로 하는 것이지만, 이 책은 소 끌려가듯 질질 끌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번역자조차 소설 말미에는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번역을 해야만 했다고 전한다. 활자로 독자와 번역자의 페이스를 쥐락펴락한다. 엄청난 능력이다.

  그 정도로 한 여자의 절망과 공포를 가슴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치르는 사투의 순간마다 나 자신을 사건 안으로 몰아넣는다. 캐시가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성장하고 전진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의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심리 묘사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느낀다. 아주 괜찮은 영화 한 편을 즐긴 것 같은 만족감이 든다. 이와 같은 스릴러 소설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비유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클래식. 쉰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B. A. 패리스는 '여기서부터 재즈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클래식을 좋아하냐, 재즈를 좋아하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둘 다 매우 좋아합니다."
 



B. A. 패리스 저 | 이수영 역 | arte(아르테) | 2018년 06월 25일 | 원제 : The Breakdown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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