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책 『총알차 타기』 - 스티븐 킹

코페르니의 책 리뷰 2023. 3. 7. 23:24

스티븐 킹 총알차 타기
이미지 출처 - 내 폰


 

  때는 2000년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온라인에서만 구입 가능한 전자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시대를 훌쩍 뛰어넘는 기행이었다. 출판 업자들의 가장 좋은 땔감이었던 스티븐 킹이 전자책을 발행한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출판 시장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남긴다. 출판 업자들도 이제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희소 섞인 말을 남겼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소설이 다 그렇듯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 플롯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야밤에 차를 얻어 탔는데 말이야. 글쎄, 그게 귀신이 운전하는 차였더라.'
  하나 더.
  '택시 야간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한 손님이 지갑을 두고 온 거야. 집에 들어가서 얼른 돈을 가져온다고 하더니,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네? 그래서 그 집 초인종을 누르고 사정을 설명했어. 문을 열길래, 슬쩍 봤더니 제사를 지내고 있네? 그런데 영정사진이 그 청년이지 뭐야. 허허허."
  대략 이런 류의 이야기가 도시전설이다.

  늦은 밤, 주인공 알란은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길을 나선다. 낡은 자동차는 고장난지 오래. 가난했던지라 택시 요금마저 없었다. 끝내 길거리에서 손을 흔드는 이른바 '히치 하이킹'을 시도한다. 가까스로 차를 얻어 타지만, 악취가 코를 찌른다. 운전수도 심상치 않다. 환절기 기후처럼 오락가락하며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인다. 기분 변화도 롤러코스터 같다. 어머니가 위독한 상황에서 알란은 어떻게 대처할까?
  알란은 기지를 발휘하며 하차를 유도하지만, 운전사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호의를 앞세워 병원까지 태워주겠다고 호들갑을 떨기까지 한다. 우여곡절 끝에 운전사와 헤어지고 재차 히치하이킹을 한다. 하지만 그는 연이어 괴기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야기 서사 과정은 가볍지만, 책장을 덮었을 때 울림이 가득하다.
  삶과 죽음의 교차점을 넘나드는 주인공을 보며 생각을 자극하게 되는 책이다.
  작은 시집 사이즈에 페이지도 얼마 되지 않아 30분이면 족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매우 짧은 중편 소설이다. 무료하지만 무거운 것은 꺼려질 때 읽으면 제격이다.
  앞서 언급한 전자책에 관한 저자의 위트있는 견해를 되짚어 보자.
  그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함과 동시에 첫 주에만 4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이 기록적인 수치는 당시 각종 언론 뉴스 기사로 보도되었다. 장차 전자책 시장이 커 갈수록 출판 업계는 재미가 없어질 게 예상되었다.
  이 책이 나온 시점으로 23년이 지났다. 출판 업계가 예전만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많은 출판사들이 건재하다. 전자책이나 플랫폼 업계도 왕성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으로 시장의 판도가 돌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지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구입해 읽는다. 종이책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서점 판매대에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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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러한 과도기에(쇄퇴하는 출판 시장을 감안하면) 종이책을 발행한 바 있다. POD(주문 제작 방식) 자가출판플랫폼을 이용했다. 인쇄뿐만 아니라 유통까지 도맡아 해 준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 인쇄소에서 한 부 찍어 배송하는 방식이다.
  POD 출판을 선택한 이유는 초기 투자 자본이 거의 없다는 점에 이끌려서이다(이론적으로는 0원이다).
  아울러 책이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을 경우, 책의 재고 처리 문제로 말썽이 생길 여지가 없다. 본질적으로 밑천을 들이지 않았기에 손해 볼 것도 없는 것이다.

  책의 원고를 채우고 있던 무렵이다. 경조사 자리에서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바로 얼마 전, 글을 기고한 적 있는 출판사의 대표를 만났다. 대표는 내가 기고한 글의 반응이 좋았다며 칭찬 일색을 늘어놓았다. 이어 최근에 쓰고 있는 원고가 있는지 캐물었다.
  나는 완성되지 않은 원고가 여러 개 있다. 다만 여러모로 바쁜 관계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렸다. 대표는 글을 쓰다보면 으레 있는 일이라며 감싸고돌았다. 이어 자신의 창작론을 한참 늘어놓았다. 듣고 있자니 나와 일치하는 부분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방향이 달랐다.

  "자네, 창의력의 원천이 뭔지 아는가?"
  "글쎄요."
  여차하면 대화 전개가 무진장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회피형으로 대답했다. 본심은 '학습의 축적'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이야 상상력. 얼마 전에 모 중견 작가에게 같은 질문을 했는데 말이야. 글쎄, '영감'이라고 말하더군. 나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절할 뻔했어."
  나는 그의 편협한 사고방식에 기절초풍하기 직전이었다.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대표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다음 호의 원고를 청탁했다.
  기고하는 일은 나의 즐거움 중 하나라 흔쾌히 승락했다. 대답은 들은 대표는 흡족해했다. 내가 기고했던 글에 원고 몇 개를 보충해 이듬해에 책으로 내자고 의중을 밝혔다.
  나는 이미 책을 출간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적인 감정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출판사 선정은 중요한 일이다. 그는 내가 망설이는 걸 보고는 굳이 자신의 출판사에서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자신에게 맡기면 기획을 잘해주겠다고 포부를 말했다. 이어 말한 그의 마지막 말이 나의 의사를 완전히 거두게 했다.
  "우리랑 하든 안 하든 원고가 다 정리되면 일단 보내주게. 우리 편집진과 읽어 보고 보강해야 할 점을 말해줄 테니."

  원고의 방향을 자기 입맛대로 손질할 게 훤히 보였다. 나는 그가 말한 편집진의 프로필을 알고 있다(작가로 구성되어있다). 더불어 그 개개인이 쓴 글을 팔로우 업해서 읽은 바 있고, 나와는 세계관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뭔가 계몽주의적인 어조가 강하게 풍겨져 짜증이 팍 치솟는 글도 있었다. 나는 대화가 거추장스러워질 것 같아 의례적인 말을 몇 마디 더 주고받고 자리를 일어났다.
  3개월 후 앞서 언급한 출판 플랫폼을 통해 POD 출간을 했다. 현재까지 나는 어떤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별개로 출판사에 약속한 원고도 무사히 기고를 마쳤다. 업무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게 싫어 마감일보다 일주일 앞당겨 송부했다.
  이메일로 원고 관련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신간 출판 사실을 슬쩍 알렸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예의상 알리기로 한 것이다(그때는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멀쩡히 오가던 서신이 그 순간 피드백이 뚝 끊겼다. '빠르고 친절한 답변에 감사하다'라는 등 그 어떤 언급도 회신도 없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딱딱함이 지나치게 묻어난 어조로 이메일이 왔다. 원고 수정에 관한 요청이었고 나의 출판에 관한 일은 노련하게 피해서 글이 이어졌다. 노골적인 비판을 섞어 내가 송부한 원고에 결함을 지적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전면적인 원고 수정과 교정, 교열을 다시 하여 제출하라는 글이 지시하듯 적혀있었다. 따지고 보면 교정, 교열은 편집부의 업무이다. 관계 구도를 따져본다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좀 선을 넘는 일이었다.
  굴욕적이고 억한 심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구차하게 토를 다는 것은 프로답지 못한 일이라 생각했다.
  내 대답은 "I got it." 흔쾌히 알겠다고 말했다. 요구 사항에 맞게 대대적으로 원고를 갈아엎고 교정, 교열 용역을 맡겨 교차 검증을 한 후 다시 보내주었다.
  그에게 출판을 맡기지 않은 사실을 안도하며.


스티븐 킹 저 | 최수민 역 | 문학세계사 | 2001년 02월 28일 | 원제 : Riding The Bullet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참고자료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저 / 2002
플랫폼 제국의 미래 / 스콧 갤러웨이 저 / 2018
어떤 선택의 재검토 / 말콤 글래드웰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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