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스티븐 킹이 각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단편소설을 모아 엮은 단편집이다.
수록된 작품들 대부분이 공포물이다. 그러나 마냥 어두운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2권의 말미에는 자신의 아들이 야구 시합을 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다룬 에세이가 실려있다. 시체 썩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모처럼 스티븐 킹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스티븐 킹의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시다. 그렇다. 정말 '시'가 포함되어 있다. 어찌나 '시'다운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글귀였다. 참고로 스티븐 킹은 메인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을 만큼 시에도 조예가 깊다(대학 시절 시 창작 실습수업을 듣던 여학생 태비와 결혼했다).
'내 귀염둥이 조랑말'이도 잔잔하고 감미로운 순수 문학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고를 한다. 어두운 컨셉의 책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아, 오해하지 마시길. 이 소설도 재미있다. 스티븐 킹 특유의 유머러스한 표현력으로 할아버지의 대사가 돋보인다.
이 작품은 특이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당초에는 킬러를 소재로 한 장편 소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침표를 찍었을 무렵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출간하지 않았고, 그 책에서 이 단편소설 분량을 추려서 따로 출간하게 되다고 한다(그 부분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란다).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이지만,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도 완성도가 높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은 '작가 해설'이다. 모름지기 책이라면 작가의 말이 마지막 장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작가 해설 이후 앵콜 구간이 덤으로 포함되어 있다(음악 공연에서 앵콜이 있는 것처럼). 이 부분은 목차를 건너뛰고 본 나로서는 뜻밖의 횡재였다. 희한한 경험이기도 했다.
'책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가정분만'은 과거에 다른 책에서 한 차례 읽은 적 있는 소설이다. 'THE 좀비스'라는 제목의 책이다. 좀비를 주제로 한 엔솔로지인데, 이 책에서 읽었을 때와 한결 색다르게 느껴진다.
비교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프랭크가 기운차게 말했다. "그러니까 빨기 가서 전기톱이나 가져와. 그리고 너…… 너…… 너…… 너……."
마지막 '너'는 그의 종손자 밥이었다.
"저는 못해요. 저는……."
스티븐 킹 외, 『THE 좀비스』 (서울: 북로드, 2015)
프랭크는 씩씩하게 말했다. "하지만 톰 좀 들고 오면서 하면 좋겠는데. 그리고 자네…… 자네…… 자네…… 그리고 너……."
마지막 '너'는 조카 손자 밥을 부른 거였다.
"저는 못 해요. 저는……."
스티븐 킹, 『악몽과 몽상. 1』 (파주: 엘릭시르, 2019)
또한, '헌사'라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야기는 신비로웠고 결말에 여운을 강하게 남겼다. 뭔가 익숙한 분위기 마저 들었다. 작가 해설에 따르면 장편 소설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초안이 된 단편이라고 한다.
이 책은 공포뿐만 아니라 스티븐 킹의 독특한 세계관과 그가 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 단편집이다.
스티븐 킹 저 | 이은선 역 | 엘릭시르 | 2019년 03월 25일 | 원제 : Nightmares & Dreamscapes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참고자료
THE 좀비스 / 스티븐 킹 외 저 / 2015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저 / 2003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 / 스티븐 킹 저 / 2017
[더 읽을거리]
2023.01.29 - [소설] - 책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책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변두리의 작은 섬마을에서 한평생을 산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22살에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한다. 한순간의 실수는 자신을 평생 고통 속으로 빠뜨린다. 22살 동갑내기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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