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책 『운동화 신은 뇌』 - 운동을 하면 죽은 뇌도 살아난다

코페르니의 책 리뷰 2023. 1. 22. 23:52
운동화 신은 뇌
이미지 출처 - 내 폰

뇌는 딱딱한 도자기라기보다 찰흙놀이용 점토에 가깝다.
역기를 들면 근육이 형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뇌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욱 강하고 유연해진다.
-본문 중에서



나는 유도 선수 출신이다.
우리 사회 저변에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아니, 했었다. 요즘은 상당 부분 나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엘리트 체육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엘리트 체육인 양성은 학업은 배제하고 운동에만 몰빵을 하는 시스템이다. 기초학습은 결여되어 있고 피지컬 능력은 월등이 뛰어난 외형으로 일반인의 정서로는 괴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체육 지도자들은 중학교에서 명문(운동) 고등학교로, 대학교로 진학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 종목에서 도태되었을 때 빚어질 플랜 B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특출 난 기술도 기초적인 학업능력도 없는 이른바 '선수 출신'이 취업하기는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다. 이에, (손흥민 아버지로 더 유명한) 손웅정 감독이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는 훈련 못지않게 학업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고 한다.

투기 종목은 힘겨루기라는 특성상 무식할 것이라는 인식이 더욱 도드라진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운동선수는 똑똑하다. 종목을 불문하고 경기 운영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피지컬 능력 30 / 전략 30 / 기세 30 / 10%의 운으로 귀결된다.
사실 10퍼센트의 운은 임의로 갖다 붙인 것이다. 100을 3등분하는 것은 애매하다. 33.3333이라고 하면 느낌이 좀 이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똑똑한 운동선수로 강호동을 떠올릴 수 있다. 유효기간이 짧기로 소문난 연예계에서 오랜 세월 시청자들의 사랑받고 있다. 그의 입담과 재치는 보통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방송에서 씨름 선수 시절을 회고할 때가 기억난다. 샅바를 잡으면 직관적으로 상대방의 힘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 선수는 자신이 '가짜' 빈틈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 미끼를 물고 파고들면 자신이 되치기를 한다고 했다. 한 수 높은 선수는 그걸 읽고 반대로 되치기의 되치기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기량이 낮은 선수는 그 빈틈조차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적 전략 없이는 승리하기 힘든 게 스포츠다. 그냥 힘으로 악바리로 우악을 쓰며 힘겨루기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몇 년 전부터 도처에 주짓수 도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주짓수를 가리켜 '몸으로 두는 체스'라고 한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 책 이야기를 하자면, 운동을 하면 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운동 동작을 배울 때 서로 의사교환을 해본 적이 없는 뉴런이 신호를 전달하면서 결합이 일어난다. 이런 연결이 자주 일어날 수록 결합하는 힘은 더욱 강해진다. 따라서 체육을 마치고 다음 수업시간은 학습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이다. 다른 시간에 비해 더 산만해질 것이라는 인식은 완전히 틀렸다. 집중력도 올려준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또한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이 활발해진다. 뇌의 구석구석까지 신선한 혈액이 골고루 퍼진다. 숨을 헐떡이며 들이마신 고농도의 산소가 농축된 혈액이 뇌로 마구 공급된다. 양질의 피가 돌아 학습능력이 더욱 증폭된다. 치매 예방은 말할 것도 없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이 분비된다. 모두 사고와 감정에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걸린다는 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충분히 들은 이야기다. 이러한 이유로 운동은 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운동을 해야 한다.

나는 일찍이 뇌의 경이로움을 경험한 적 있다. 뇌경색으로 언어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지인이 2년의 재활 끝에 유창하게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 주치의가 말하길 뇌에서 언어 기능을 관장하는 부분에 혈전이 생겨 조직이 죽었다고 했다. 그는 굴하지 않고 과거에 좋아하던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이후 감각이 약간 돌아오자, 동화책 읽기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잘 될 리 없었다. '어버버'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르고 정상적으로 회복했다. 지금은 외국어도 유창하게 한다.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 바로 옆 부분의 뇌 조직이 말하기 기능을 배운 것이다. 뇌 가소성 덕분이다.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도 실제로는 뇌가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가벼운 걷기마저 뇌 가소성을 더욱 유연하게 만든다.


숲에서 반복하여 걸으며 새로운 길이
다져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습을 반복하면 뇌에 새로운 회로가 자리를 잡는다.
-본문 중에서



존 레이티, 에릭 헤이거먼 저 | 이상헌 옮김 | 녹색지팡이 | 2009년 09월 05일 | 원제 : 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참고자료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 손웅정 저 / 2021
체육관으로 간 뇌과학자 / 웬디 스즈키 저 / 2019
세로토닌하라! / 이시형 저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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