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묘한 제목의 책을 접하게 된 건 '쿠팡' 알고리즘 덕분이었다.
문득 채소를 사야 한다는 걸 깜빡해 쿠팡을 들어갔다. 로켓프레시 카테고리에 들어가기도 전에 불쑥 저 책을 제안하더랬다. 나는 이토록 신통한 책이 다 있나 싶었다. 나는 가끔 이런 사색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전쟁이 나면?'
'대지진이 나면 어쩌나?'
TV를 즐겨보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쩌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잠깐이라도 꼭 시청을 한다. 대자연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약간 경이롭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 「Man vs. Wild」에 출연한 베어스 그릴이라는 인물은 더 존경스럽다. 나의 이런 생존 본능은 약간의 선망을 넘어 집착에 가까워지고, 2022년에는 전쟁과 피난에 관련된 글을 써 작은 공모전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쿠팡이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그야말로 데이터에 아주 충실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통조림 빵 따위를 검색하고 멀티툴을 구경했으니 말이다(멀티툴은 평소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참고로 차에 기름도 항상 5만 원어치 정도는 넣어두고 있다. 이건 재미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니 웃고 넘어가 주시길 바라며.
서론은 그만 접어두고,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훌륭하다고 평할 수 있다. 재미있어 보였지만 덥석 책을 주문할 수가 없었기에 빌려 읽었다. 고맙게도 '예스24 북클럽'이라는 도서 구독서비스에 있었다. 책 내용이 생각보다 괜찮아 소장용으로 간직하기 위해 또 다른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했다. 영화 '친구'에서 상곤이 형님 대사를 인용하자면 약은 여기서 받아먹고 충성은 엉뚱한 데서 맹세한 셈이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책을 가정에 한 부씩 보급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위기상황에서 어떤 물을 마셔야 하고 이동수단은 어떻게 확보하며 난방 연료는 무엇이 적합한지를 낱낱이 알려준다.
저자는 군용 전투식량은 사지 말라고 권한다. 가격이 비싸고 생각보다 유통기한도 짧다는 것이다(1~3년). 그럼 무엇을 사야 하나? 국수, 즉석 스프, 전지분유, 시리얼, 참치캔을 준비하라고 권한다. 국수는 라면보다 귀중한 식량이 된다. 라면이 비상식량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유탕처리제품 특성상 유통기한이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다. 면에 남아 있는 기름 성분에 쉽게 산패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소비기한은 더 길기만 유통기한에서 2개월만 초과해도 군내가 나기 시작한다. 반면 건조 국수는 제조과정에 소금물을 사용한다. 그 염분이 부패를 막아준다. 유통기한도 3년에 달하여 장기보관에 손색이 없다. 2L 페트병에 넣어서 보관한다면 더 오래 보관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라면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점이다.
참치캔은 유통기한이 7년으로 상당히 길다. 그리고 실제 소비기한은 10년 더 연장된다. 맛에도 안전도에도 문제가 없다. 보스니아, 시리아 내전 당시 참치캔이 금반지보다 귀중하게 거래되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저자는 특수전사령부 출신 군인이다. 일명 '특전사'로 알려져 있다. 특전사는 2023년 현재에도 레바논, UAE, 남수단, 소말리아 등지에 파병을 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실전 부대다. 최고로 치는 특수부대이기에 저자의 말에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다.
"비상용이야."
언젠가 지인이 차 트렁크에 고어텍스 재킷을 둘둘 말아서 보관한 걸 두고 했던 말이다. 그도 특전사 출신이다. 이라크전에 파병을 가 실제 전쟁을 경험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이어졌기에 유난 떤다며 사람들에게 빈축을 샀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벤치마킹하여 코어텍스 재킷과 그가 추천한 몇 가지 생존 키트를 마련해 차에 두고 다녔었다(현재는 트렁크 용량 초과로 드러냈지만. 그래봤자 책가방 분량이긴 했다).
위기를 조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우리가 심정지를 원해서 CPR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지 않나.
이 책의 특이점은 베어스 그릴이나 '나는 자연인이다' 같이 야생에서 살아남기라는 단서를 달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도심형 재난에서 살아남기'가 주제다. 그것도 '내 가족을 지켜내기'라는 조건까지 붙어있다. 고작 내 목숨 하나 부지하는 비결이 담긴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넷플릭스에서 *재난 관련 콘텐츠를 보면 공통점이 숨어 있다. 진정은 적은 우리 주변인들이라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익숙한 타인이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때문에 각 가정에서도 재난 상황을 대비한 위기대응 시나리오를 하나씩 마련해두면 어떨까 싶다.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집은 절차가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디테일은 뺐다).
1. 할머니 집으로 집결, ~2일 차
2. 상황 발생 2일 차. 부산 소재의 김서방 집으로 이동(미처 할머니 집으로 못 갔다면 바로 부산으로) //김서방 집이 함락되었다면 안서방 집으로 갈 것.
3. 김서방의 고모부 배를 타고 해외로 이주.
우리 집은 계획된 시나리오와 몽둥이를 든 내가 있다. 그러니까, 어림없다. 암, 그렇고 말고.
재난에서 가장 먼저 고통을 받고 피해 입는 이들은 가진 것 없는 서민과 힘없는 여자, 아이들, 노인들 같은 약자이다.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 본문 중에서
우승엽 저 | 들녘 | 2014년 07월 16일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참고자료
블랙썸머 / 넷플릭스 시리즈 / 2019
투 더 레이크 / 넷플릭스 시리즈 / 2020
'자기계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세이노의 가르침』 - 지금까지 믿고 있던 상식에 대하여 No라고 말하라 (0) | 2023.02.01 |
---|---|
책 『타인의 해석』 - 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안다고 착각해서 비극에 빠질까? (0) | 2023.01.15 |
책 『마시멜로 이야기』 - No pain, No gain (4) | 2022.11.29 |
책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 - 먹는 장사,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10) | 2022.11.24 |
책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 조던 피터슨 (6) | 2022.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