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책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 추리소설 작가의 에세이

코페르니의 책 리뷰 2023. 1. 6. 00:03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이미지 출처 - 밀리의 서재



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잽싸게 찾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저자의 스노보드 입문기다.
어린 시절 007의 제임스 본드가 스노보드를 타는 장면을 동경하여 마음에 담에 두고 있다가 불혹이 넘은 나이에 큰마음먹고 시작하게 되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 꿈꾸던 로맨스가 있을 것이다. 나는 피아노가 버킷리스트다. 작년 그러니까, 2022년에 피아노를 배워볼까 싶어 교습소를 알아보기 이르렀다. 그러나 여의치 않아 다시 덮어 두고 훗날을 기약했다. 상황이 허락하는 곳은 지향하는 교육방식이 맞지 않았고, 막상 여기다 싶은 곳은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자는 스노보드 마니아다.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스노보드 외에 다른 스포츠도 활발하게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검도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여러 가지 종목을 거쳐오며 모두 웬만한 수준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의 소설에 스포츠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운동을 테마로 한 작품을 꼽자면, 「마구」「동급생」(야구), 「방과 후」(양궁), 「기도의 막이 내릴 때」(검도), 「기린의 날개」(수영) 얼른 생각해 봐도 이 정도로 떠오른다.

사실 나는 겨울 스포츠에는 문외한이라 이 책을 읽기에 상당한 거부감이 들었다(막상 읽으니 진도가 술술 나갈 만큼 몰입이 되었지만). 내가 동계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까닭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학창 시절 유도를 했다. 꽤 진지하게 했다. 수없이 부상을 달고 살았다. 인대가 끊어진 곳은 여러 곳이며 허리는 고질병처럼 부상이 따라붙었다. 결국 척추 수술을 감행했다. 말은 보탤수록 커진다고 어린 나이에 무슨 운동을 그렇게 했을까 싶겠지만, 그 시절에는 정말 그렇게 했다. 많이 하고 강도 높게 해야 좋은 거라고 간주하던 때다.
강제로 시켜서 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올림픽 출전이 꿈이었다. 중2병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중학교 2학년의 넘치는 호기를 꺾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그 덕택에 지금도 비가 오면 온몸이 쑤신다. 최근에는 무릎 통증이 유독 심해졌다. 장마철에는 이 증세가 더욱 심해진다. 오죽하면 다음 날 기후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생겼다. 이런 까닭에 나는 넘어지는 것을 병적으로 주의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빙판에서 즐기는 스포츠나 허리를 과도하게 돌리는 운동은 나에게는 독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지인들이 스키장이나 한번 가자고 권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유다.
어쨌든 이 책의 볼거리는 에세이를 빙자한 소설이다. 총 10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세 편은 에세이로 시작해서 소설로 끝맺음하는 아주 기묘한 형태의 글이다(곳곳에 숨어있으니 눈여겨봐야 한다. 여차하면 수필로 오인하기 십상이다). 개중에 자주 등장하는 빨간 옷을 입은 여성 스노보더에게 약간의 사심이 들어간 것 같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절대' 아니라고 일축한다.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저자는 이른바 '돌싱'이다. 그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예전에 내 아내였던 여자'라는 약간 웃긴 표현으로 슬쩍 전처 언급한다. 소설가다운 위트다. 그의 소설은 주로 비극적인 결말의 범죄를 다루기에 좀 어두운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겨 나갔다. 저자는 술 좋아하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코미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우울증을 겪는 반전 스토리는 흔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전무 한 건 아니었다.
세금 걱정을 하는 대목도 여러 번 나오는데, 스노보드 관련 글을 쓰면 스노보드에 관련된 지출은 비용처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세금 걱정을 하려면 대체 책을 얼마나 팔아야 할까?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10일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