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숱하게 읽었지만, 그의 에세이는 이 책이 처음이다. 애당초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의하면 5권의 에세이를 집필했다고 말한다.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 책을 포함 총 4권이고 절판 도서를 제외하면 3권이 유통되고 있었다.
이 책은 두 종 잡지에 기고한 글을 갈무리하여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연평균 2권을 장편소설을 집필하면서 쉴 틈도 없이 에세이도 기고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나 또한 책을 집필하는 동시에 매거진에 글을 기고해 본 경험이 있어 그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을 잘 알고 있다. 뭐 어떻든 책 제목은 「사이언스?」라고 대놓고 과학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띠지에는 과학책이 아님을 익살스럽게 강조한다. 약간의 과학 냄새를 풍기는 에세이 정도로 보면 알맞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다시피 덴소 社 엔지니어 출신이다(덴소는 자동차 부품을 제작하는 알아주는 일류기업이다). 따라서 저자가 과학적 소재로 글을 쓰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잡지사에서 과학을 기반으로 원고를 요청받은 듯하다. 실제로는 과학과 무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저자도 글 서두에 미안하다고 여러 번 언급한다(약간 애교 있게). 하지만 상관없다. 그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에 대한 단상을 마일드하게 다루기는 한다. 예를 들자면, 저자가 소설가로 데뷔하던 시절에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최근에는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기에 이야기를 쓸 때 틀이 확연하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이 의문의 변사체가 발견한 즉시 공중전화로 달려갈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이러한 집필의 후문을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묘미도 있다. 저자의 모친이 돌아가시고 쓴 글이 눈길을 끈다. 부친의 부양 문제를 세세하게 고찰하는 내용이다. 글을 쓴 시점에 저자는 40대 중반이며 부친은 86세다. 자신은 독신이라 부친을 모시기 어려운 실정이고 누나 두 명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처지라고 말한다. 언뜻 보기에도 저자는 늦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부친이 40세에 자신을 낳았다고 한다. 20대 시절에는 그 부분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회고한다. 한창때 나이에 부모님 부양 문제를 고민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막상 20대에 접어들자 자신의 예상과 달리 최근 60대는 노인 축에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젊고 활발한 활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친께서도 경제 활동에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앞가림만 잘하면 되었다고 말한다. 거기다 부모님과 나이 차이가 많아서 생기는 의외의 이점은 또 있었다. 앞서 설명했듯 자신이 40대 중반에 부모님께서 80대인 점이다. 그러니까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40대에 부양 걱정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친구들 사정은 부모님과 약 스무 살 정도 간격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자녀가 60대에 접어들어 자신의 노후를 걱정해야 할 시기에 부모님 노후문제가 따라붙는 것이다. 저자는 '젊을 때 자식을 낳아야 훗날 편하다'라는 말도 이제 다 옛날 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과거에는 여자 나이 서른다섯에 아이를 낳으면 고령 출산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최근 정서는 많이 달라졌다. 아울러 직장인이라면 초반 10년이 그 이후 어떤 대목의 10년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그 코어타임에 출산과 육아로 공백 기간이 생긴다면 말 그대로 경력 단절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연약한 20대보다 서른이 넘어 기운이 넘치는 경우도 있다(나의 경우 웨이트 트레이닝 중량이 20대보다 30대에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져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도 줄어들 것이다. 세상이 좋아진 덕에 육아도 예전만큼 체력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대목은 저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또래 세대들도 공감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설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안겨주는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나도 평생을 특이하다는 평을 듣고 살았기에 내심 반가웠다.
히가시노 게이고 저/김은모 역 | 현대문학 | 2020년 01월 15일 | 원제 : さいえんす?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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