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너무 재미있게 본 탓일까.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주저 없이 읽어 치웠다.
최근 들어 책을 고르기 까다로워진다. 조금만 들춰보고 독서를 포기하는 책이 늘어간다. 비록 제목이 마음에 안 들지만, 피터 스완슨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도 제목의 타당성에 의구심이 들었다. 역시나 알고 보니 원제는 따로 있었다(그녀의 모든 두려움Her Every Fear - 이게 더 타당한 것 같다). '몇 호가 어쩌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목으로 정할 만큼 중요한 설정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짜증스러운 점은 제목을 외우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다.
몇 년 전 TV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 있다. 당시 백종원은 주인장도 이름을 헷갈려 하는 어떤 메뉴를 지적했다. 맛을 떠나 상호나 메뉴는 네이밍을 단순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척하면 떠오르는 '그것'이 되는 게 궁극적 목표다.
어쨌든 피터 스완슨은 소설 맛집임이 틀림없기 때문에 나 같은 불평쟁이도 별수 없이 찾아서 읽는다.
이야기 서사 구조는 흠잡을 데 없이 탄탄하다. 다만, 시점 오류가 가끔 눈에 띈다.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흘러가다가 난데없이 1인칭 시점과 섞이는 구간이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기에 한번 씨익 웃고 이야기의 세계로 다시 빠져들게 된다.(읽으면 그걸 따지는 것보다 이야기 전개가 더욱 시급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00년 초반에 K-1이라는 이종격투기가 인기를 끈 적 있다. 정통파 격투가들의 싸움이 뻔했던 일본 프로모터들은 미국에서 160kg의 근육질 미식축구 선수를 영입해 왔다(이후 씨름판에서 최홍만 선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경기 전 선수를 소개하는 과정이 있다. 그 선수는 잘 알려졌다시피 격투기 경력은 전무했다. 따라서 '격투기 수련 경험 무(격투기 영화 많이 시청)'이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자막을 송출하며 등장했다. 싸움에 대한 기술적 얽매임 없이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정통파 명문 선수를 상대로 초등학생들 드잡이할 때나 볼법한 주먹질을 날리며 상대를 떡사발로 만들었다(참고로 말하자면 그 선수는 '밥 샙'이다). 형식에 갇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에 충실한 게 아닐까. 격투가는 잘 싸우고 작가는 그저 재미있게 잘 쓰면 그만인 것을.
종전에는 이 비슷한 이야기를 읽어 본 적도 없을 만큼 참신한 내용이다. 런던에서 만난 노숙자가 맥북과 휴대용 와이파이 라우터를 들고 있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탁 칠만큼 현실 고증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피터 스완슨 저/노진선 역 | 푸른숲 | 2018년 08월 16일 | 원서 : Her Every Fear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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