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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저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21일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합니다!" 저자 김정운 박사가 말한다.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별다른 건강상의 특이점이 없다면 90세는 무난하게 산다. 그 말은 은퇴 후에도 30~4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류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정년 퇴임이나 조기 은퇴를 한 가장이 배우자에게 의존하는 현상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외로워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외로움이란 감정적인 공허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는 것. 즉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최근 들어서 혼밥 문화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밥은 여럿이 같이 먹어야 하는 게 온당한 정서였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그야말로 사회 부적응자나 왕따라는 시선이 팽배했다. 요즘은 그나마 한 풀 꺾인 것 같지만 혼밥 문화가 슬그머니 유행을 타기 시작했을 때, 약간 있어보는 척하려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힙스터'들 사이에서 혼밥 하는 것이 마치 미덕이고 나는 유행하기 전부터 '원래' 혼밥 하는 사람이었어, 라며 각종 SNS에 인증샷을 퍼 나르기도 했었다. 혼술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약 10년 전쯤 가느다란 서체의 레터링 타투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보다 이전에는 트라이벌이라는 문양의 타투가 유행했다. 아는 지인이 유행에 질새라 팔뚝에 타투를 새기고 왔었다. 이튿날 주변인들이 타투를 발견하고 관심을 갖자, 후배는 좀 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그 후배가 시간 감각을 잊은 줄 알았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저자 김정운 작가는 혼자만의 시간 못지 않게 자신만의 공간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운전을 하다보면 차선 변경을 할 때, 흔히 겪는 일이 있다.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음에도 가속페달을 더욱 밟아 진로를 방해하는 족속들을 보곤 한다. 저자는 이 현상을 가리켜 공간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습성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사회적 거리가 있다. 연구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지만, 약 70센티 정도로 본다. 양측 간의 거리를 합산하면 140센티 정도 되겠다. 차량에 탑승 중이라면 보닛부터 해당될지 핸들부터 해당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되, 자신의 앞을 침범당했다고 여긴다는 주장이다. 자신만의 배후 공간이 없는 사람들은 차가 유일한 본인의 공간이다. 내 영역에 대한 침범을 용납할 수 없다.
부부의 침실이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공동 영역이고, 애들은 주로 엄마 방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주방이라는 꽤 그럴싸한 프라이빗 공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말 공간이 없는 환경이라면 집안 구석에 작은 책상이라도 하나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럼 여성 운전자들은 왜 상대적으로 온화한 걸까? 방어적이라서?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배후 공간의 부재'라는 오래된 연구를 소개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여성은 화장을 한다. 그날의 스케줄이나 상황에 따라 화장의 정도와 톤도 확연히 달라진다. 의상도 변수가 된다. 배우가 분장하는 것처럼 당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하나의 배역처럼 받아들인다. 즉 다양한 면모로 성찰이 가능하다. 조커가 화장을 하면 과감해지는 원리가 생각난다. 따라서 남자보다 감정적 배후 공간에 여유가 많다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 참고로 말하자면 김정운 작가는 심리학의 발상지인 독일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향에 따라 혼자 있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을 귀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꼭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해야하는 건 아니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플러그를 뽑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움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나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 날이 바짝 서 있던 시퍼런 감정이 온화하게 누그러진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얻는 행복감도 말할 수 없이 크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비움과 때로는 채움의 시간을 가지며 외로운 삶의 견뎌낼 용기를 길러내자.
책 장을 넘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목에 담이 걸릴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훌륭한 책을 읽다보면 책값보다 파스 값이 더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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