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한강 저 | 창비 | 2007년 10월 30일 | 번역서 : Vegetaria
유튜브 알고리즘에 추천 영상으로 2016년 맨부커 시상식이 올라왔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 영상이 나에게 제안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호기심이 일어 클릭했다.
엄숙한 분위기의 시상식에서 사회자가 조용히 읖조렸다.
"베지-테리언."
과천의 경마장에서나 경험할 법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담한 여인이 걸어 나와 개미 같은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얘기했다. 그것도 영어로.
뭔가 울컥하며 엄청난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심각한 국뽕 알러지가 있다. 그래서 그날 느낀 감정은 단순히 애국심이 주는 감동은 아니었다.
얼마 후 가로수길에 중고 서점을 들렀다. 딱히 살 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약속 시간에 좀 이르게 도착했었다. 시간도 죽일 겸 들른 것이다. 그리고 중고 서점은 의외의 발견을 하기 좋은 장소다. 이것저것 훑어보고 나가려는 찰나에 '채식주의자'가 내 눈에 떡 하니 보이는 것이다. 그런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책을 손에 쥐고 나왔다.(당연히 값을 치렀다)
'나는 이 책을 읽어 볼 운명인 것이다.'
이 책은 연작 소설이다. 연작소설은 독립적인 결말을 가진 단편이나 중편소설이 같은 세계관으로 이어진 소설을 뜻한다. 흔히 장편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단막극으로도 기승전결이 성립한다. 이 책은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아, 책을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라며 감탄했다. 각 3개의 이야기는 판이하게 다른 기법으로 전개된다. 어떤 이야기는 1인칭으로 흘러가고 다른 이야기는 3인칭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시점이 교차된다.
나는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순수 문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 책은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따라서 국제적인 상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글.
등장인물 중에 미디어 아티스트가 나온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미디어 아트 애호가다. 대표적으로 백남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형식을 깨트리는 창조 능력, 아이 같은 천진함,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 그야말로 천재 그 자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한 길이 없다. 미디어 아티스트가 한 대목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점에서 저자의 예술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간결한 문장으로도 여러 가지 생각을 남기는 글. 책을 덮었을 때, 여운을 남기는 글을 읽고 싶다면 채식주의자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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