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책 『나목』 - 박완서 데뷔작

코페르니의 책 리뷰 2022. 10. 27. 01:06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박완서 저자(글)
민음사 · 2005년 10월 01일 출시

이미지 출처 - 내 폰



소설가 박완서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이다.
1970년 등단하던 그해 나이 마흔이었다.
왜 표지에 화가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그림을 걸고 있을까?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지금은 없어서 못 산다고 하지만, 한때는 헐값에 초상화를 그리는 신세로 전락했었다.
화가로서 한창 성장 궤도에 올랐지만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빈곤층으로 곤두박질쳤다. 당시 먹고 살기 급급해 예술은 사치였다. 우연한 기회를 얻어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저자 박완서는 그 시절 박수근과 PX에서 같이 근무했던 경험을 논픽션 소설로 회고했다. 말하자면 자전적 소설이다.
왜 나목인가? 책 표지에 나와있는 그림에 나무가 '나목'이다. 그림 중간에 앙상하게 가지만 뻗어 있는 나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 나무를 대게 고목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완서는 나목이라고 할까? 줄거리를 순차적으로 밟았을 때의 감동을 내가 깰 권리가 없기에, 대략적인 맥락만 설명한다면,

우리는 피카소나 고흐의 괴상한 성격을 말해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살았다.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일화, 그리고 특유의 음침한 화풍으로 귀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자화상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냅킨에 낙서를 쓱싹 하고 있던 피카소에게 한 시민이 그 냅킨을 달라며 요구했고 이에, 2만 불을 제시한 일화. 판본마다 대사는 조금 차이 나지만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대충 재구성하자면,
"1분 만에 휘갈긴 낙서를 그렇게 비싸게 팔아요?"
"1분이 아닙니다. 40년 만에 그린 겁니다."
이런 예술가들의 악동 기질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던 자신을 나무에 투영한 건 아닐까?
거대한 나무. 한때는 울창하고 굳건했던 모습이었던 나무. 지금은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헐벗은 나무. '벗을 나'(裸). 나무 목.
그렇지만 뿌리는 깊게 내리 박혀,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나무. 뭔가 울컥한 게 올라온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눈시울도 붉어진다. 그리고 무척 재미있다.
저자는 서울대 국문과를 입학했지만, 1학년도 마치기 전에 한국전쟁이 터져 학업을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변변한 문학 수업 한 번 받은 적 없다. 심지어 습작 기간도 없다. 그럼에도 데뷔작이 곧장 대표작으로 자리 매김 했다(박완서 작가는 다작을 했음에도).
쑥스러운 나머지 원고도 식구들이 자는 밤중에 몰래 작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회고하길 자신도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으로 나목을 꼽는다고 말했다. 재 판본을 찍을 때 수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이 또한 자신의 삶의 흔적이라 생각해 손대지 않고 출판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유명 맛집에서 MSG로 맛을 보태지 않는 시그니쳐 메뉴를 먹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