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히가시노 게이고 저자(글) | 김난주 번역
재인 2014년 05월 26일 출간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매트릭스의 대사가 떠올랐다. "빨간 약 먹을래? 파란 약 먹을래?"
어떤 색상인지 분명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둘 중 하나를 먹으면,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는 가상의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 살아간다. 다른 하나를 선택하면 모피어스라는 흑인 배우를 따라가서 컴퓨터들과 싸우는 삶을 살게 된다.
넓은 의미에서 영화 터미네이터의 세계관과 살짝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AI 시스템과 대립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책의 제목에 있는 '패럴렐 월드'가 무엇인고 하니 평행 우주라는 뜻이다. 그래? 그건 또 월까?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이런 제목을 썼는지.
우선, 평행 우주는 쉽게 말하자면, 나와 똑같은 모습을 가진 또 다른 내가 같은 시간대인 지금 우주 어딘가에 무수하게 많이 공존해 있다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지금 여기서 이 글을 적고 있는 나 말고, 우주 어딘가에는 포장마차에서 오뎅 국물에 소주를 퍼먹고 있는 내가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행성에서 나는 네 발 달린 짐승의 외형을 띠고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 그런 혼란을 겪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회사 친구와 밥을 먹고 2차로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고 가정하자. 다음날 회사에서 친구에게 어제를 회자했다. 친구는 반문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자신은 어제 축구동호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었더니 본인도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한 기억이 떠오른다(실제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컨셉 설명을 위한 가상의 예를 드는 것이다. 줄거리를 읊어 버리면 김새기 마련이다).
그 외에도 주인공은 수시로 몇 가지의 기억이 겹치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회사 친구는 실종같은 출장을 가버린다. 실종인가. 출장인가. 친구의 행방을 추적하며 현실은 더더욱 알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지는 기분이다.
아무리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라도 제목이 너무 비호감이라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당연히 책은 재미있었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세계 4대 자동차 부품 회사로 손꼽히는 '덴소' 출신이다. 그러니까 공학자로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공상과학과 추리가 절묘하게 섞인 소설이다. 가상현실 기술을 심도있게 다룬다(사실 거의 대부분). 그래도 어렵지 않게 의미를 쉽게 잘 녹였다. 그리고 대화문에 교묘하게 풀어놨다.
그러니까 과학을 시쳇말로 '1'도 몰라도 관계없다. 오히려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반전은 당연히 있고 감동도 훅 밀려온다.
개인적으로 반전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책장을 덮고 나서였다.
이 책의 초판 발행 연도가 1995년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배경으로 나오는 IT기업은 구글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구글은 1998년 창립했다.
시대를 내다보는 저자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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