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쿠비카 저자(글) · 신솔잎 번역
해피북스투유 · 2021년 07월 15일 출시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오래전에 피터 아츠라는 격투기 선수가 있었다.
정말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다. 인물도 훤칠하고 경기 스타일도 젠틀해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선수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셀럽들이 수많은 수식어를 낳듯, 피터 아츠도 여러 닉네임과 수식어가 존재했다.
미스터 K1, 하이킥 벌목꾼이 대표적이다. 격투기 팬들은 다양한 이미지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피터 아츠 선수를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등장할 때 모습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대개 격투기나 권투 시합에서는 선수들의 등장 퍼포먼스가 매우 중요한 의식처럼 행해진다. 주로 허세를 부리며 각자 트레이드 마크로 하나씩 가지고 있는 세레머니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내가 기억하는 피터 아츠는 그냥 링까지 전력 질주한다. '다 필요 없고, 우리 빨리 한 판 붙자!'
이 책도 그런 느낌이 팍팍 온다. 목차도 없다. 아니, 있기는 한데 형식상 제목만 한 번 더 되풀이되어 있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어라, 얘 봐라?" 이런 느낌이 강하다.
첫인상이 강렬한 만큼 내용도 아주 참신하다.
어쩌다 전자책 플랫폼에서 추천하는 걸 선택해서 읽었는데 보물을 주운 격이다. 나는 이 책을 소장하고 싶은 욕심에 구입해서 한 번 더 읽었다.
시중에 베스트셀러라는 딱지를 달고 책이 쏟아져 나온다. 진짜일까? 막상 읽어보면 내용이나 논리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제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 일부 키워드 거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도 띠지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라고 광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진짜'다.
대부분의 가짜 베스트셀러와 비교를 거부한다. 정말 재미있고 가슴이 쓰라린다. 책을 읽고 나면 표지에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만 봐도 뭉클해진다(아마 주인공이겠지?).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담금질이 되어있다. 그래서 웬만한 스릴러물은 좀 읽다 보면 트릭을 간파하곤 한다.
이 책도 내용 중반부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반전 코드를 읽어냈다. 그러나 반전을 읽어냈다고 해서 이야기의 재미가 반감되는 게 아니었다. 끝까지 정주행 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그냥 이야기 자체 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글이 좋다. 표현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참신하다. 헤밍웨이가 강조하던 부분이다. 문장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거다. 가벼운 문체를 사용하지만, 표현은 변화무쌍하다. 진정한 고수다.
또 목차부터 형식을 깨트리고 시작한다. 목차로 겉치레 따위 하지 않겠다는 거다(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법도 남다르다. 이렇게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기존에도 독립된 이야기를 다른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교차해가면서 전개되는 소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생각난다. 그러나 베르베르는 등장인물의 시점이 교차하면서 이어진다. 그러니까 A 주제 한 번 다루면 B 주제가 반드시 교차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결말에서 만난다.
이 책은 다르다. A 주제에서 이야기가 한 차례 끝나면 반드시 B로 이어지지 않는다. A 주제의 화자가 내레이션을 한 번 더 하고 싶으면 곧바로 A가 다시 등장한다. 이런 기법은 처음 접해본다.
워크맨이 음반 시장을 평정했을 때, MP3가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뀐 형세가 생각난다.
이 책은 뭔가를 깨고 나왔다. 습관이나 관습이 바뀐다고 무조건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야기의 배열이 살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선구적이다(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이런 기법을 따라 한다고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 훌륭하다.
미국 변두리 마을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소설을 좋아한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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