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지방을 부정하고 악마화해온 연구들을 재조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지방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지방이 건강에 이롭다고 주장한다. 책의 결론부에서 이탈리아 농부처럼 올리브 오일을 사발로 마실 수 없다면 포화 지방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이는 기존의 상식을 부정하는 측면이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법도 하지만, 2016년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아무런 반향이나 관심도 얻지 못했다. 학계와 식품 업계에서는 오히려 이 주장을 유사과학으로 간주하며 무시했다.
저자 니나 타이숄스는 영양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지방에 대한 편견이 형성되는 과정을 다룬다. 요약하자면, '지방은 해롭다'는 일반적인 통념 그 배후에는 곡물 산업의 영향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곡물 카르텔이 있다는 것이다. 곡물에도 카르텔이 있나 의아해할 수 있다. 국내에는 대기업이 농업 분야에 참여할 수 없는 규제가 적용되어 있다. 국내 모 대기업이 새만금에 유리 온실 농업 사업에 진출하려다가 규제에 막혀 중단된 적이 있다. 그러나 해외로 시선을 돌리면 대기업이 농업을 주도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몬산토'라는 거대 기업이 그렇다. 더불어, 빌 게이츠가 대규모의 농지를 인수했다는 소식과 워런 버핏이 곡물 회사의 지분 비율을 늘리고 있다는 뉴스도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다.
본디 농사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농민들은 대개 약자이며, 주머니 사정이 어렵고 빠듯한 생활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미안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를 감안한다면 나름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우리 문중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어른이 계셨고 이로 인해 해당 업계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트랙터의 높은 가격, 농사에 사용되는 수많은 케미컬들, 그리고 그 케미컬들을 조합한 레시피에 따른 수확량의 변화 등을 고려하면 농사는 사실상 과학의 영역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오늘날 농업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 아니다.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 주요 작물인 쌀을 예로 들어보자. 모내기 철에 짧게 1~3일, 길게 일주일 가량 모를 심는 일을 한다. 그나마도 몇 년 전부터는 마른 땅에 드론을 띄워 볍씨를 뿌리는 직파법이 개발되기에 이른다(맨 땅에서도 발아가 잘되는 품종으로 수확량은 기존 대비 약 15%가량 줄어들어 호기심에 이 방법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모심기로 돌아가는 추세이다). 모를 심기 전에 제초제와 비료를 미리 살포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농약 사용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만일 예상치 못한 병충해로 인해 방제나 비료 시비가 필요한 경우, 드론을 활용해 손쉽게 해결한다. 이 과정은 논 한 마지기 기준 최대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농촌 지역 대부분이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드론을 사용하기는 어렵지 않다. 전화기를 꺼내 들어 관할 지역의 읍, 면 사무소에 신청하기만 하면 된다. 행여나 대기 순번이 길다면 사설 업체를 고려할 수도 있다. 비용은 평당 30원 정도에 불과해 저렴한 축이다. 땡볕 아래에서 농약 살포기를 메고 논둑을 헤집고 다니는 일은 옛말이다. 최근에는 농촌 지역의 재래시장을 방문하면 종묘상보다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드론 사무실이다. 수확의 시기에 가을걷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일주일 정도 팔을 걷어붙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콤바인이라는 장비는 수확과 동시에 타작을 한다. 밤까지 불을 밝혀 놓고 콩 타작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한 해 농사를 지으며 논의 진창에 들어가는 횟수는 10번도 되지 않는다. 힘들다는 건 의례적으로 하는 소리다. 국내 사정을 고려할 때 천조국(국방 예산만 천 조에 육박하여 부여된 말)이라 불리는 미국의 상황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농업 전체에 종사하는 인구 비율은 1%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여 생산물이 나오는 실정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카르텔들이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이권을 부풀려 나가는 것을 목격해왔다. 저자는 철저한 연구와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통해, 지방이 해롭다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떤 인물들이 연루되어 있는지 밝힌다. 이름 높은 연구 기관과 다국적 식품 업계가 그 배후에 있다. 이들의 정치적 영향이 영양 가이드라인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건강 증진보다 돈줄을 틀어 쥐는 것에 더 몰두해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년간 혹독하게 채식을 해온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 책에서 눈여겨볼 점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이끌어주지만, 결코 비판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기자 출신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글쓰기 스타일이다. 저자도 언론인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팩트 중심의 논리로 어떤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매력적인 글쓰기 스타일은 언론인들이 마땅히 채택해야 할 모범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언론 기사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 명의 독자로서 종종 편향된 글을 접하면 뜨악하게 된다.
이 책은 충분히 검증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하고 있다. 저자는 복잡한 과학적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건강, 영양, 식품 산업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읽어 볼만한 책이다.
니나 타이숄스 저 | 양준상, 유현진 역 | 시대의창 | 2016년 04월 08일 | 원제 : THE BIG FAT SURPRISE
지식/정보: ★★★★★
흥미/몰입: ★★★☆☆
이해/명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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