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스티븐 킹
- 출판
- 황금가지
- 출판일
- 2017.08.18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하)'는 공포와 심리적 긴장감이 압도적인 걸작이다. 이번 편은 주인공들이 악마 같은 존재인 '그것'과의 최종 대결을 그린다.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 하수도에서 '그것'과 대치한 경험이 있었고 그 당시에도 한 번 물리쳤으나 전투에서의 승리에 불과했고, 완전히 괴멸시키지는 못했다. 이들이 '그것'을 물리친 방법은 벤의 은화를 녹여 만든 은구슬을 비벌리가 새총으로 쏴 맞추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구슬의 물리적인 위력만으로 '그것'이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물리적 싸움이 아니라 아이들이 새총이라는 도구로 믿음과 의지를 객체화하여 '그것'과 싸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은구슬은 아이들의 믿음과 용기를 상징하는 도구였으며 그들의 강한 의지와 결단력이 동원되어 정신과 육체가 모두 싸움에 관여함으로써 '그것'을 물리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후술 하겠지만 거북이의 조력도 있었다).
이 전투 과정에서 아이들은 상당한 트라우마와 공포를 겪었고, 도망치는 '그것'을 미처 추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보내다시피 퇴로를 방치한다. 이 일은 하수도에서 벌어졌는데, 데리의 하수도는 주정부가 여러 번 바뀌면서 공사 계획이 변경되고 예산 문제 등으로 파이프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거기다 관리의 소홀로 인해 분실된 설계 도면만 어림잡아 4kg에 달했다. 아이들이 '그것'을 물리쳤지만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하수도에 남겨졌다는 의미이다. 악을 물리쳤지만 다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며 전의를 상실하고 무기력해진 상태였다. 하수도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죽어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홍일점인 비벌리는 자신과 친구들이 모두 관계를 맺자는 어처구니없는 방안을 제안한다. 비벌리는 친구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그 행위가 마법적인 힘을 불러 모아 자신들을 지상으로 안전하게 귀환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다. 앞서 그것과 싸우기 전에 거행했던 쿠드 의식처럼 초자연적인 힘을 얻으려는 시도였다. 이 행동은 미성숙한 아이들의 어리석은 판단처럼 보이지만,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서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강한 결속력을 보여준다. 우여곡절 끝에 비벌리의 고집대로 그 행위가 이루어졌지만 결코 마법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첫 경험은 아이들이 다시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하수도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한편, 그것과 싸우기 직전, 비벌리는 그것에게 정신이 지배되어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를 피해 달아났다. 하수도에서 탈출한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조용한 세상에서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으러 떠났다. 비벌리의 거처와 사후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비벌리가 친구들의 도움과 학교 당국, 사회복지기관의 지원을 받아 가정폭력 문제를 극복하고 학업을 이어나갈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지하에서 거대한 악과 싸우던 아이들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저녁을 먹는 일상으로 복귀하는 장면은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한 포인트이다. 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인류의 생존 위기를 걸고 투쟁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황과 그 당사자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저자가 해학적으로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들이 집으로 가기 전, 황무지에서 콜라병 조각으로 손바닥을 그어 피가 나는 손을 맞잡고 만일 '그것'이 다시 나타나면 다시 뭉쳐서 물리치기로 맹세한다. 그러나 그 이후 주인공들은 서서히 이날의 기억을 잃어간다. 27년 후 다시 만난 이들은 대부분의 기억을 상실한 채였다. 어딘가에서 생존해 있던 '그것'이 주인공들이 데리로 돌아오지 않도록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억제하고 부와 명예를 얻어 데리에서 아주 먼 곳에서 현실에 안주하며 살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27년 뒤, '그것'이 다시 세상에 고개를 내밀자 주인공들은 데리로 모이게 되고 차츰 기억을 회복해 '그것'을 처치하러 하수도로 찾아간다. 악역인 헨리와 비벌리의 남편 톰은 '그것'에게 지배당해 주인공들을 위기에 빠뜨린다. 주인공들은 헨리를 무찌르고 톰은 '그것'의 모습을 보고 놀라 심장마비로 즉사한다. 최종 대결에서 주인공들은 쿠드 의식을 거행하며 '그것'과 맞서 싸운다. 에디가 결정타를 날리고, 버벅이 빌이 '그것'의 심장을 뜯어내며 모든 일을 종결짓는다. 이 과정에서 에디는 목숨을 잃는다.
27년 전 하수도에서 우연히 만났던 거북이는 '그것'의 반대인 선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그것'은 거북이가 죽은 후 두려울 것이 없어져 다시 주인공들을 데리로 불러들였다. 줄거리만 보면 자칫 해괴한 이야기 같지만, 막상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으면 내용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중심 스토리에 붙어있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 문장 하나하나의 표현력이 무척 재치 넘친다. 이 책은 호러 또는 공포 소설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코미디에 가까울 정도로 문장이 재치 있다.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유치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전혀 유치하지 않은 소설이다. 표현력이 돋보여 아무런 줄거리가 없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 문장력이 이 책의 포인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짬을 내어가며 하 권을 읽는 데만 6일이 소요되었고 시리즈 전체를 읽는 데 16일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단 1초도 아깝지 않았다. 다시 정리하자면, '그것'은 악의 근원이며 공포를 에너지원으로 먹고 산다. 주로 광대의 모습으로 나타나 공포에 취약한 아이들을 유혹해 먹잇감으로 삼는다. 1950년대 미국에서 어릿광대는 아이들에게 친숙한 이미지였을 것이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그 유명한 맥도날도의 마스코트가 광대였다. 현재는 광대가 기괴함과 섬뜩한 이미지를 주어 철회되었다. 영화에서도 광대는 미치광이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조커를 생각한다면).
핵심 요약
1. 10대의 주인공들은 은구슬과 쿠드 의식을 사용해 '그것'을 물리친다. 이 과정에서 극한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겪는다. 성인이 된 후, 27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것'과 싸워 결국 괴멸시킨다.
2. 비벌리의 제안으로 아이들은 신뢰와 결속을 강화하며 서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진다. 이 강한 유대감은 '그것'을 물리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그것'은 악의 근원으로, 주로 광대의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해 공포를 조장하고 먹잇감으로 삼는다. 이는 1950년대 미국에서 친숙했던 광대의 이미지를 활용한 것이며 현대의 섬뜩한 광대 이미지와 연결된다.
스티븐 킹 저 | 정진영 역 | 황금가지 | 2014년 03월 15일 | 원제 : IT
감동/여운: ★★★★★
흥미/몰입: ★★★★★
이해/명료: ★★★★★
[스티븐 킹의 소설 리뷰 더 보기]
2024.07.10 - [소설] -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상)' 책 리뷰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상)' 책 리뷰
그것(It) 1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을 대표하는 소설 『그것(It)』 제1권. 4년이라는 집필 기간 끝에 완성된 작품으로, 1986년 출간과 동시에 2주 만에 밀리언셀러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작품의 인
durumi5.tistory.com
2024.07.11 - [소설] -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중)' 리뷰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중)' 리뷰
그것(It) 2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을 대표하는 소설 『그것(It)』 제2권. 4년이라는 집필 기간 끝에 완성된 작품으로, 1986년 출간과 동시에 2주 만에 밀리언셀러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작품의 인
durumi5.tistory.com
2024.05.29 - [소설] -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 리뷰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 리뷰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티븐 킹의 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보편적인 스릴러 장르를 벗어난 매우 도전적인 작품이다. 저자는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로 이야기 속에
durumi5.tistory.com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븐 킹의 '샤이닝' 악령과의 싸움, 그리고 가족의 생존 투쟁 (64) | 2024.08.14 |
---|---|
스티븐 킹의 '나중에', 귀신과 대화하는 소년 (69) | 2024.07.22 |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중)' 리뷰 (73) | 2024.07.11 |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상)' 책 리뷰 (70) | 2024.07.10 |
스티븐 킹의 소설 '다크 타워 1, 최후의 총잡이' 리뷰 (53) | 2024.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