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한 기회로 지방의 어느 한적한 휴양지에 다녀온 적 있다.
산 중턱에 있는 그곳은 저녁이 되면 그야말로 칠흑같이 어둠이 잠식했다. 여차하면 반딧불이가 날아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숙소 밖에는 인공조명이 하나도 없었다. 벌레 우는 소리만 들려오는 겨울밤은 길고 따뜻했다. 무심결에 리모컨을 쥐고 벽걸이 TV를 켰더랬다. 내 평온한 상황과는 반대로 TV 속은 살얼음판이었다. 건장한 교복 청소년이 양친과 대치 상태로 서 있었다. 그 아이는 걸핏하면 무력으로 모친을 제압하는 문제로 솔루션 제공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른바 '분노조절장애'를 극심하게 앓고 있다고 호소했다. 엄마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반성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고치려 했다. 다만,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마음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단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의 의지는 명확했다. 그런 가운데 아이에게 솔루션을 제공해 주는 인물이 낯이 익었다. 바로 '오은영' 박사였다. 그래, 맞다. 2005년 TV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했던 그분이다.
때는 바야흐로 주작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드라마도 여간해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힘들었다. 불륜은 진부했고, 패륜이 적절히 들어가 줘야 좀 색다르다고 세간에 오르내리는 정도였다. 그 시절 드라마를 복기하면 실로 무시무시할 따름이다. 가족관계만 따져봐도 낯이 화끈해진다. 문제아 개선 프로도 다를 바 없었다. 주로 평일 아침 방송에서 그러니까, 성격 급한 아이와 자칭 아동 전문가 한 두 명 섭외하여 몇 가지 조언을 해주고 문제가 개선되었다는 식의 반전스토리를 연출하는 식상한 내용이 판을 쳤다. 때문에 오은영 박사의 등장은 실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작도 남달랐다. 대부분의 문제를 보호자의 영향으로 생긴다는 점을 지적했다. TV를 보지 않는 나조차 인터넷에 떠도는 짧은 영상과 요약본을 시청했다. 당시 화제를 일으켰던 회차는 거의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유명인 관련 뉴스는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지식이 없지만, 오은영 박사는 알고 있다(백종원도 안다). 잊을 수가 없다. 어쨌든 그 대단한 재주를 최근까지 이어서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오은영 박사의 책을 찾아 읽었다. 대부분 한 번쯤 들어봄 직한 내용이었다. 백종원 솔루션처럼 주요 골자는 방송에서 한 번씩 언급한 방법이었다. 구체적인 사례와 디테일한 설명도 말이다. 그 방법이라는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 아이를 '존중하기'로 해석이 가능하다. 'A 상황에는 C, B 상황에는 V 작전으로 응수할 것' 같은 수동적인 가르침이 아니었다.
아이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 아이의 상황과 맥락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 공식과 비슷하다.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맹목적이거나 조건 반사식으로 아이에게 적용하는 실수는 하지 말자.
그래도 속 터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중에서
오은영 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6년 04월 29일
정보/지식 : ★★★★★
재미/감동 : ★★★★★
#참고자료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 / 채널A / 2022
흐르는 강물처럼 / 브래드 피트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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